본문 바로가기

보드게임

Lay back Review 7 [ 영웅들의 귀환 ]

저는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1999년에 시작한 발더스 게이트를 지금도 가지고 놀 정도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TRPG, 던전 앤 드래곤을 본격적으로 즐겨보지 못한 아쉬움을 항상 가지고 있던 중 탈리스만이라는 보드게임을 알게 되었고 꽤 아끼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피규어를 직접 도색한 게임입니다. 도색 방법도 몰라서 에나멜로 칠했던 기억이 있네요.

 

직접 도색한 탈리스만 3판의 피규어들

 

탈리스만은 사실 모노폴리와 비슷한 보드의 바깥라인을 돌며 카드를 뽑아 이벤트를 진행하는 아주 간단한 게임입니다. 캐릭터가 성장을 하긴 하지만 맵도 너무 단순하고 깊이를 느낄만한 부분도 딱히 없어서 파티게임에 가까운데, 간단한 게임성에 비해 플레이 타임은 상당히 긴 게임입니다. 재미가 없진 않지만 가볍게 즐기려고 꺼내기엔 플레이 타임이 부담이라 아끼는 게임인데도 생각처럼 잘 플레이되진 않는 게임입니다.

 

지금은 글룸헤이븐이라는 걸출한 RPG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만 저 당시엔 가슴 한 편의 작은 구멍을 메워 줄 게임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해외구매를 했던 게임이 When darkness comes라는 게임이었습니다. TRPG를 흉내 낸 게임이었는데요, 모듈형 맵과 단편 소설 수준의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호러 테마의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 거의 최악이라 할 정도의 룰북을 제공했던,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게임이었습니다. 크게 한 번 실망한 후에 좀 간결하면서 탈리스만보다는 조금이라도 RPG의 맛이 살아있는 게임이 없는지 찾던 중 영웅들의 귀환 (Return of the heroes)이라는 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왼쪽이 Return of the heroes(2003). 오른쪽은 확장 Under the shadow of the dragon(2004).

저는 독어판으로 구매했습니다만 이후에 영문판도 출시 되었습니다. 조금 더 참지 못한 것을 후회했죠. 저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독일어 룰북으로 게임을 익히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게임치고는 꽤 깔끔하게 정리가 가능했던 트레이.
동일한 능력치의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양면으로 구분해 둔 캐릭터 시트.
모듈형 맵. 컴포넌트도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뛰어난 아트웍을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목표인 이름없는 자(Nameless one)가 위치한 탑과 그 곳을 지키는 네명의 가디언.
메인퀘스트.

플레이어들은 각자 두개의 메인 퀘스트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공통적으로 두 단계를 거친 후에 얻게 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자신의 출발지인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보석을 얻게 됩니다. 이 보석을 얻어야만, 그러니까 메인 퀘스트를 해결한 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최종 보스인 이름 없는 자와 싸울 수가 있습니다.

 

게임의 시스템과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각 맵타일마다 두 개의 임무 토큰이 랜덤 하게 놓입니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와 관련된 토큰들이 지정된 장소에 놓이고, 5개의 마법 아이템도 놓입니다. 5개의 마법 아이템은 최종 보스와 싸울 때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정도의 아이템입니다. 그리고 몇 종류의 토큰들은 주머니에 넣어둡니다.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임무를 얻게 되고, 임무를 해결하면서 캐릭터가 성장합니다. 보드 위에 놓인 토큰들이 게임에서 제거될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둔 토큰이 랜덤 하게 보드 위에 놓입니다. 특히 어떤 플레이어가 메인 퀘스트의 첫 번째 단계를 완료하면 최종 보스 토큰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머니에 추가됩니다.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들이 등장하게 되겠죠. 그 외에도 미리 주머니에 넣어 둔 토큰들도 등장하게 되겠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위와 같은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고, 상점이 나오거나, 배가 등장하여 호수를 건널 수 있게 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트레이너들은 캐릭터의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기도 한다.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장소들도 존재한다.
어떤 길들은 캐릭터들 지체시킨다.
캐릭터를 지체시키는 장소들
메인퀘스트와 관련된 토큰과 마법아이템 토큰은 미리 맵 위에 올려 둔다.
이름 없는 자의 정체는 미리 알 수가 없다

이 게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최종 보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보석을 얻은 후 보스의 탑에 도착해야만 보스의 정체를 알 수 있는데 캐릭터와 상성이 좋지 않아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데에 몰두하며 누가 먼저 보스를 만나러 갈지 서로 눈치를 보게 됩니다.

 

비교적 독특한 주사위 굴림을 사용한다.

이 게임은 조금 독특한 주사위 굴림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시트에는 세 가지 능력이 표시됩니다. 파란색은 마법, 초록색은 원거리, 빨간색은 근거리 능력입니다. 위의 캐릭터 중 프리스트를 보면 각각 6, 3, 5의 능력치를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주사위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각각 2X, 3X 등의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2X는 6면체 주사위 두 개를 굴린다는 뜻입니다. 주사위 두개를 굴린 결과값의 합이 능력치 이하라면 주사위 굴림에 성공하게 됩니다. 능력치보다 낮게 나와야 하기 때문에 능력치가 높아야 좋습니다. 이 게임을 처음 했던 한 친구가 왜 캐릭터가 성장하면 주사위를 더 많이 굴리냐며 괴랄하다고 말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능력치가 향상되면 능력치 옆의 네모칸에 같은 색상의 큐브를 놓아 능력치가 향상되었음을 표시합니다. 추가 주사위가 그려진 칸까지 큐브가 채워지면 아래 쓰인 수만큼 주사위를 굴리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주사위 결과값을 모두 합하는 것이 아니라 굴린 주사위들 중 원하는 주사위 2개를 골라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확률을 높여가는 방식이죠.

 

이 게임은 특이하게 당시의 게임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솔로 플레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솔로 플레이에 사용하는 보드.

솔로 플레이는 45 턴을 진행한 후 얻은 점수를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비디오 게임에서 하이스코어를 갱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막상 게임을 해보면 45 턴은 상당히 짧습니다. 아니, 짧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게임에 큰 단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특수한 길들입니다. 대부분의 길들은 베이지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일부 몇 군데는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길이나 투명한 길 등이 존재합니다. 이 길들은 대부분 2d6 <=6(6면체 주사위 두 개를 굴려 6 이하가 나와야 하는) 주사위 굴림에 성공해야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다인플의 경우 모든 플레이어가 비슷한 상황이라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솔로 플레이는 턴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몇 번만 순서가 지체되어도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평범한 길로 돌아가기에는 퀘스트들과 관련된 장소들이 특수한 길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 별 수가 없습니다.

 

솔로플레이 중 메인퀘스트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제 캐릭터

 

보드게임 긱을 살펴보면, 이 게임의 웨이트는 2.36, 평점은 6.5, 순위는 2,541위입니다. 제가 긱에서 준 평점은 8.0입니다만 매우 주관적인 평가이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7.0-7.5 정도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단점은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고, 리플레이성이 좀 떨어지는 편입니다. 쿨타임을 상당히 길게 가져야하고 확장판을 더해도 리플레이성이 크게 올라가진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지나치게 플레이타임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그래서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는 게임입니다만, 성취감이 큰 게임은 아니라서 친구들끼리 무드를 즐기는데 의의를 많이 두는 플레이어들이 아니라면 두루 추천하기는 어려운 게임입니다.